홍정기 수석연구위원

Ⅰ. 새로운 기술로 재탄생하는 석탄화학
Ⅱ. 차별화 제품으로 독자 영역 구축에 나서는 바이오화학
Ⅲ.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부상이 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

한동안 주춤했거나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졌던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 산업의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화학산업의 근본적 구조 변화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석탄화학은 당분간 중국을 중심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등 환경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신흥개도국을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추진될 전망이다. 석탄 이용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처리 문제가 해결될 경우 석탄화학의 글로벌 확산도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미래 석탄화학 산업의 주도권은 중국이 장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최신 석탄화학 기술을 적용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중국에서 가동 또는 시험 중에 있으며, 석탄화학 육성을 위한 중국 정부의 의지도 강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화학은 지속가능경영 확산 트렌드에 힘입어 양호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낙관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어 바이오화학 산업의 성장 기반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바이오화학 벤처들의 활발한 활동도 바이오화학 산업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벤처 활성화는 바이오화학 제품의 다양화를 촉진시켜 전체 시장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비식용 자원으로의 원료 대체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화학산업을 지배해온 석유 중심의 원료 및 기술 구조는 석유, 석탄, 바이오매스가 공존하는 다원적 구조로 변화할 전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은 독자적으로 생존가능한 영역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화학기업들 입장에서는 최근의 환경 변화를 기회로 인식하여, 기술 상호 간의 협력과 조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석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화학(유기화학)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플라스틱 등의 석유화학제품은 물론 의약품, 화장품, 염료, 도료 등의 대부분 화학제품들이 석유나 가스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석유의 시대가 도래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으며, 화학산업의 석유 기반 전환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 1920∼1930년대 초대형 유전의 잇따른 발견과 함께 석유가 대량 생산되면서 당시의 주력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석유나 석탄의 주 용도는 당연히 연료지만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성분 상 화학산업의 원료로도 이용될 수 있었다. 석유가 석탄을 급속히 대체해 나가면서 화학산업의 원료도 1940년대를 전후로 자연스럽게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었다. 주변에서 대량의 석유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고, 가격경쟁력도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석탄 또한 천연 유기물(바이오매스)을 대체하면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석탄으로부터 얻은 합성염료나 합성수지, 합성섬유가 천연 염료나 천연 소재를 대체한 것이 좋은 예이다. 결국, 한 시대의 주력 에너지원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화학산업도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최근 에너지산업 및 화학산업의 변화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향후 석유의 안정적 공급능력 유지 여부가 의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에너지원의 한 축을 담당해온 원자력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환경문제는 강력한 환경규제로 이어져 에너지 소비 패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화학산업에서는 한동안 주춤했거나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졌던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과연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 산업의 최근 변화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 화학산업의 근본적 구조 변화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이어진다면 그 모습은 어떠할 것인지 짚어본다.

I. 새로운 기술로 재탄생하는 석탄화학

 고유가 지속으로 석탄화학 프로젝트 급증

 고유가 지속 및 신흥 개도국의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석탄 수요는 당분간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성에 의하면 석탄 소비의 한 지표로 사용되는 세계 합성가스1(Synthesis gas) 생산량이 2004년 이후 높은 증가세로 돌아섰으며, 최근에는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되어 2016년 합성가스 생산능력은 2010년 수준보다 7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탄은 전체 소비량의 약 2/3가 발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석탄의 소비 패턴은 앞으로도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석탄액화(Coal-to-liquids, CTL)나 산업용(철강, 화학 등)의 높은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35년 사이 석탄의 수요 증가분 중 60%가 발전 부문에서 이루어지고, 30%가 산업용 및 석탄액화 부문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2. 석탄 소비의 또 다른 특징은 선진국(OECD국가)과 개도국(非OECD국가) 간의 소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 소비를 되도록 줄이려는 입장인데 반해 개도국들은 값비싼 석유를 풍부한 석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석탄액화3를 포함한 석탄화학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석탄 소비국이자 생산국으로 이미 다양한 석탄화학제품들을 생산 중이다. 생산능력 기준으로 메탄올의 74%, PVC의 84%가 석탄을 사용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의 석탄화학 투자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생산 가능한 제품이 다양해지고 있고,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예를 들면 석탄을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 등), 파라자일렌, 에틸렌글리콜 등 중국 내 자체 공급이 부족한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나, 석탄을 천연가스나 합성석유 등 석유계 연료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급증하고 있다. 그 규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올레핀의 경우 현재 2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계획 중이며, 이를 모두 합하면 연간 생산능력이 1천만 톤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합성섬유의 원료로 사용되는 에틸렌글리콜 역시 약 20개의 프로젝트가 계획 중이며, 총 400만 톤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가스의 경우는 이보다 더욱 열기가 뜨거워 2009년 이후 제안된 프로젝트가 연간 생산능력 기준으로 총 850억 입방 미터에 달한다. 이는 2010년 중국 천연가스 공급량의 90%에 달하는 수준이다.

환경문제로 인한 입지 제약 지속

석탄화학 기술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주요 에너지원 중 석탄이 환경문제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은 여전히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석탄의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로는 과다한 물 사용,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 광산 개발에 따른 환경 훼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석탄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현재 기술로 석탄 1톤을 가공하면 1∼2배럴의 석유를 얻을 수 있다. 석유나 가스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동일한 양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양의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자연히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해결이 가장 어려운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석탄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유나 가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일본 전력중앙연구소에 의하면 LNG복합발전의 경우 kwh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74그램인데 비해 석탄화력발전은 약 2배인 943그램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유일한 방법은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분리·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을 적용하는 것인데, 이 역시 비용이나 입지 면에서 제약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미국, 호주 등 석탄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CCS 기술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연구가 한창이나, 아직까지 경제성 있는 기술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석탄화학 프로젝트의 지역 별 편중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IEA 역시 향후 석탄화학 프로젝트는 환경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신흥개도국을 중심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석탄화학 분야의 주목할 기업들



① 60년 만에 빛 보는 석탄화학의 최강자, Sasol

석탄화학의 부활과 함께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종합 에너지·화학 기업인 Sasol을 들 수 있다. Sasol의 석탄화학사업 이력은 상당히 특이하다.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석유 수입이 봉쇄당하자 궁여지책으로 자국 내의 풍부한 석탄 자원을 활용하기로 결정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50년 Sasol을 설립한다. Sasol은 독일 기술을 기반으로 1955년 석탄액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화학 콤플렉스를 구축,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남아공의 세쿤다(Secunda) 콤플렉스는 연간 4천만 톤 이상의 석탄을 이용하여 일산 16만 배럴 규모의 합성연료와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거대 거점으로 성장하였고, 석탄액화에 관한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증된 설비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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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Sasol은 석탄화학에 관한 한 경험이 가장 풍부하고, 유일하게 기술이 검증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로 석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Sasol은 화학산업의 변방 기업에서 하루아침에 가장 인기있는 기업의 하나로 변신하였다. 무려 60년간의 사업 경험과 노하우, 숙련된 기술 인력 등은 쉽게 모방하기 힘든 핵심역량이 되었다. 현재 Sasol은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중국, 인도 등의 거대 석탄화학 프로젝트와 연결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합작으로 추진 중인 석탄액화 프로젝트는 약 2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현재 중국 정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Sasol은 자국 내 제 2의 석탄화학 콤플렉스를 포함해 석탄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향후에도 적극적인 사업 확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Sasol 이외에도 중국에서의 석탄화학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Dow Chemical(에틸렌글리콜, 아크릴산, PVC 등), Total Petrochemicals(폴리올레핀), Celanese(에탄올) 등이 중국 기업과 합작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② 미래 석탄화학의 주도권 노리는 중국 기업들

최근 중국 정부는 석탄화학 분야의 투자 과열을 막기 위해 프로젝트의 허가 기준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프로젝트 추진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현재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모두 성사될 경우 연간 1억 톤 이상의 엄청난 석탄이 소요되는데, 이는 결국 국가의 전략 자원 낭비 및 환경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조치가 석탄화학 프로젝트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일부 견해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석탄화학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는 중국 정부의 석탄 이용 고도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들 수 있다. 세계 3위의 석탄 보유국인 중국은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전략 자원인 석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목표 하에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개발을 추진해왔다. 석탄 발전을 비롯해 석탄화학 분야에 대한 선진기술 습득과 동시에 기술 자립을 추구한 결과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크게 축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석탄기업인 Shenhua의 경우 Sasol, Dow 등과의 합작을 추진하는 한편 자체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석탄직접액화 설비를 가동 중이기도 하다. 중국 최대의 석유화학기업인 Sinopec도 자체 석탄액화기술 확보를 위해 최근 미국의 Syntroleum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석탄화학 분야의 최강자로 중국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청정석탄기술이나 CCS기술 등 최신 기술 개발이 다소 뒤져 있으나 나머지 석탄화학의 상업화 영역에서는 가장 뛰어난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 자원과 생산요소(인력, 설비 등)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상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며,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기술력도 급속히 향상되고 있다. 석탄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중국 석탄화학기술의 수출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을 비롯한 과거의 석탄기술 강국들이 자국 내의 반대로 상업화 연구가 부진한 반면, 중국은 세계 최신 석탄화학 기술의 실험 무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프로젝트가 가동 또는 시험 중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본격적인 상업화에 돌입해 경험을 축적할 경우 또 하나의 Sasol이 탄생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 할 것이다.

Ⅱ. 차별화 제품으로 독자 영역 구축에 나서는 바이오화학



 지속가능경영 확산에 따라 안정적 수요 확보



 바이오화학이란 바이오매스(재생가능한 생물자원)를 원료로 연료나 석유화학 제품, 정밀화학 제품 등을 생산하는 분야를 총괄한다. 의약품, 농산물 등과 구분하여 각종 산업용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산업용 바이오(Industrial Biotechnology 또는 White Biotechnology) 분야라고도 부른다. 바이오화학은 바이오의약(Red Biotechnology), 바이오농업(Green Biotechnology)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고, 이에 따라 성장도 더딘 분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바이오화학의 성장세가 빨라지면서, 이러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바이오화학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주역으로는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바이오재료와 정밀화학제품이나 각종 화학물질 등의 바이오케미컬 분야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바이오화학 분야는 바이오연료 중심으로 성장해 왔으나 경쟁이 가열되면서 부가가치가 저하되고, 대규모 원료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바이오플라스틱이나 바이오케미컬 분야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과거와 달리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지속가능경영 확산에 따른 안정적 수요 창출을 들 수 있다. 소비자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지속가능성은 이제 기업의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바이오화학 원료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 채용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추세이다. 코카콜라, 펩시, 하인즈, P&G, 토요타, SONY, HP, 시세이도 등 다양한 분야의 선도 기업들이 자사 제품의 용기나 부품에 바이오화학 원료를 채용하기 시작하고 있고, 채용의 비중도 지속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러한 수요가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속가능성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은 경기 변동에 따라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5
다른 하나는 바이오화학 제품의 사용가치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바이오화학 제품은 생분해성 제품 중심으로 용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재생가능 자원을 원료로 사용하되 생분해성을 포기하고 성능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가격은 다소 비싸더라도 석유 기반 제품과 동등한 성능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자하는 전략은 적중하였고, 결과적으로 바이오화학 시장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화학·농업 분야 대기업 주도로 대량생산 본격화

 바이오화학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부각되면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연산 20만 톤 규모의 바이오PE(폴리에틸렌) 공장을 완공한 브라질의 Braskem은 이번에는 2013년 가동 예정인 연산 10만 톤 규모의 바이오PP(폴리프로필렌)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Braskem은 세계 최대의 그린 플라스틱 기업을 목표로 자사 제품의 친환경성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Braskem은 이를 위해 자동차, 식품 포장, 화장품, 생활용품 등의 세계 유명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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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는 ‘PlantBottle’ 이라는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 PET용기에 바이오플라스틱을
부분 채용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100% 바이오플라스틱제 용기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Dow 역시 브라질에서 바이오PE 연산 35만 톤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현지 에탄올 생산기업과 합작으로 사탕수수 재배에서 바이오PE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용수(에탄올 처리 공정에서 회수), 전력(사탕수수 부산물을 활용한 열병합발전)까지 자체 해결하는 친환경 설비를 지향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NatureWorks(곡물기업인 Cargill과 데이진 합작), Telles(곡물기업인 ADM과 Metabolix 합작), Myriant(중국 화학기업인 Bluestar와 제휴) 등 기존의 바이오화학 기업들도 자신의 주력 분야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2010년 세계 바이오플라스틱 생산능력이 70만 톤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투자계획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기업들이 향후 시장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투자의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가시화될 경우 바이오화학 산업의 성장 기반은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바이오화학 분야의 주목할 기업들

①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는 DuPont

게리 해멀은 그의 저서 ‘꿀벌과 게릴라(Leading the Revolution)'에서 영속적 혁신을 위해서는 혁명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전형으로 ’노련한 혁명기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가 말한 ’노련한 혁명기업‘이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산업을 한 번 이상 재창조한 기업을 의미한다. 만일 화학산업에서 이러한 개념에 어울리는 기업을 찾으라면 DuPont이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802년 창업한 DuPont은 2002년 창업 2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주도하기 위한 사업모델로 바이오기술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업(Science Company)으로의 전환을 선언하였다. 이를 위해 DuPont은 섬유, 의약, 석유 등 과거의 주력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Pioneer Hi-Bred 인수(1999년, 77억 달러 규모) 등 바이오농업(종자, 농약 등) 분야를 강화하는 데 집중적인 자원을 투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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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기술 기반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DuPont의 다음 목표는 바이오화학 분야로 압축되고 있다. 금년 5월 Danisco(63억 달러 규모) 인수는 Pioneer Hi-Bred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로 바이오화학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DuPont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덴마크의 Danisco는 식품원료와 공업용 효소(자회사인 Genencor에서 담당)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DuPont이 인수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기업이다. 양사는 인수 이전부터 바이오폴리머 원료, 바이오에탄올 등에서 합작 관계를 유지해온 바 있다.
DuPont은 이미 2006년 ‘2015 Sustainability Goals'라는 보고서를 통해 2015년까지 8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재생가능자원으로부터 얻는다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그동안 내부 역량의 축적을 통해 바이오폴리에스터(PTT) 소재의 상업화 등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DuPont은 자사의 역량에 Danisco의 앞선 발효기술 및 광범위한 사업 인프라가 더해질 경우 상당한 규모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연 DuPont의 공격적 시장 진출이 다른 대기업들의 연쇄적 진출을 야기하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② 차세대 바이오화학 제품 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 벤처들

바이오화학의 전망을 밝게 하는 또 다른 현상 중 하나는 바이오화학 벤처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오화학 벤처는 주로 미국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시아, 유럽, 남미 등 전세계로부터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다양한 기업들이 벤처 투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BASF, Dow, Lanxess, DSM 등 전통적 화학기업들의 참여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벤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바이오화학 산업의 성장잠재력 및 기술혁신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바이오화학의 가장 큰 장점으로 광범위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제품이나 정밀화학제품의 상당 부분이 바이오화학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벤처 활성화는 바이오화학 제품의 다양화를 촉진시켜 전체 시장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벤처가 활성화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비식용 자원으로의 원료 대체 요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바이오화학 제품은 대부분 옥수수나 콩, 사탕수수 등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시장이 확대될 경우 식용자원인 곡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셀룰로스 등 비식용 자원으로부터 바이오화학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더 나아가서는 목표로 하는 물질을 최대한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전용 작물의 개발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바이오농업 분야 기업들과의 제휴 확대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Ⅲ.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부상이 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가세로 화학산업의 다양성 확대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동향은 과거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은 투자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 경제 상황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사업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못하다 보니 연구개발이 위축되고, 기술발전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다시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고, 투자 열기가 지속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최근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부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화학산업의 근본적 구조 변화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중의 급격한 확대에는 제약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석유 중심의 원료 및 기술 구조가 석유, 석탄, 바이오매스가 공존하는 다원적 구조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 과정을 통해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은 독자적으로 생존가능한 영역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에너지 시장의 장기적 구조 변화 및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트렌드의 확산을 들 수 있다. 먼저 향후 에너지 시장에서는 석유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바이오매스의 비중이 확대될 전망이다. 석탄의 경우는 전체 비중은 줄어들지만 석탄 이용에 적극적인 신흥국의 소비는 양호한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천연가스의 변수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원료 측면에서 석탄과 바이오매스의 영향력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지속가능성은 환경규제 강화와 고객들의 환경의식 수준 향상에 따라 기업 경영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는 바이오화학 제품의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석탄화학은 지역별 범용 제품, 바이오화학은 프리미엄 제품에 특화 예상

 석탄화학은 우선적으로 중국, 인도 등 석탄 활용에 적극적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현지 특성에 맞는 제품 생산에 특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올레핀만이 아니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에틸렌글리콜, 파라자일렌, 에탄올 등으로 생산 제품이 다양해질 수 있다. 또한 중국 PVC산업에서 경험했듯이 이들 국가의 석탄화학 활성화는 역내 석유화학제품 수급구조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석탄 이용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처리 문제가 해결될 경우 석탄화학의 글로벌 확산도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글로벌 에너지·화학 기업들을 중심으로 CCS는 물론 이산화탄소를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바이오화학의 경우는 엄밀히 말해 기존 화학제품의 경쟁 상대라기 보다는 기존 제품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PE가 석유계 PE와 성능은 동일하지만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고객이 두 제품을 다른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밀도가 가장 낮은 바이오매스의 특성을 고려할 때 바이오화학 제품이 기존 화학제품과 가격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따라 바이오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취약한 성능을 최대한 개선하여,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바이오화학의 활성화는 고객의 선택의 폭을 넓혀 화학산업의 외연을 확대시키는 긍정적 효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존 화학기업들, 경쟁보다는 공존의 지혜 필요

 기존 화학기업들은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시장 확대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는 비중이 낮아 우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향후 성장을 지속할 경우 자사 제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등장은 기존 화학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경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상업화 초기 단계로 아직까지 생산성이 낮은 것이 최대 단점으로 지적된다. 반면 기존 화학기업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대량생산 기술과 제품 개발 역량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자를 결합할 경우 다양한 시너지효과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로는 기존 화학기업들에 있어서는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 사업에 대한 진출이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하거나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화학기업들이 석탄 및 바이오 화학 기업들과의 제휴나 합작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 참여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석탄화학 사업을, 브라질에서 바이오화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Dow Chemical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잠재력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정도까지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의 부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다양한 원료와 기술 기반이 공존하는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석탄화학과 바이오화학이 니치 시장에 머물겠지만, 환경 변화에 따라서는 장기적으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화학기업들 입장에서는 최근의 환경 변화를 경쟁 심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기술 상호 간의 협력과 조화를 통해 장기적 관점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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